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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묘(文成公廟)

운영자 | 2013.05.03 21:08 | 조회 5208







문성공묘는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사당으로 규모는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집으로,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柱座)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 주두를 놓고 첨자를 내어 그 위에 소로가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보 방향으로는 쇠혀(牛舌)를 내고 안쪽으로는 보아지 모양을 하여 툇간의 보를 받치는 초익공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서 대들보를 전면 고주(高柱)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자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건물의 좌측과 뒤편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사방 돌담을 두르고, 정면에 외단문을 설치하고 우측에 협문을 두었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初丁日)날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笏記文書)가 전하고 있다.

현판 글씨는 성균관 명륜당(明倫堂)현판을 쓴 중국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글씨이다. 사당에는 묘(廟)와 사(祠)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대부분의 사당이 사(祠)라 칭하며 조정 내에서 많은 논의를 통하여 모든 대신들의 동의가 있고 이를 임금이 인정한 특정한 사당만이 묘(廟)라 칭하고 있다.
그 예를 들면 조선 역대 임금들을 모신 종묘(宗廟)가 있고 성균관에는 공자님을 모신 문묘(文廟-공자의 존칭인 大成至聖文宣王廟의 줄임말)가 있다.  또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당을 현충사라 하고 충장공 권율 장군의 사당을 충장사라 한다.
따라서 그 명칭만으로도 소수서원의 문성공묘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수많은 사당들 중에서도 그 격이 특별함을 알 수 있다.

안향은 고려말 중국으로부터 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하여 학풍을 진작한 공으로 동방주자학의 시조이자 안자(安子)로 추앙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신라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에 이어 고려시대 인물로는 정몽주(鄭夢周)과 함께 동방18현으로 선정되어 서울 성균관과 지방 각 향교에 배향되고 있다.

이렇게 전국의 향교에 배향되고 있는 문성공 안향을 모시는 사당을 그의 고향인 이곳 순흥 땅에 따로 세우고 그 명호를 사(祠)가 아닌 묘(廟)로 지칭한 것은 동국성리학의 효시가 되는 문성공 안향의 위상을 말해준다.

문성공묘는 영귀봉 동쪽 어귀에 위치하고 있는데 풍수지리상으로 영귀포란형에 해당되는 명당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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