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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는 천 년의 그리움, 화엄종찰 부석사

운영자 | 2013.05.03 16:08 | 조회 7503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


태백산 정기가 뻗쳐 소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봉황산 기슭에 자리한 부석사는 자연의 질서 속에 인공의 미가 조화된 천년고찰로 선사의 지혜와 종교관이 숨쉬고 있다.
상공에서 바라보면 화엄사상을 상징하는'화(華)'의 형상을 연상할 수 있고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면 비상하는 새를 볼 수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해동 화엄종을 개종한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발원지이다.

우리나라 5대 명찰 중 하나인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왕명에 따라 창건한 사찰로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며 마소가 근접할 수 없는 곳을 찾아 5년여를 헤맨 끝에 봉황산 중턱에 화엄경의 근본 도량을 세웠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던 화엄사상이 서라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사찰에 뿌리를 내리고 퍼져 간 것은 의문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화엄사상의 요체를 이해하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주의 본질은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관계를 바로 보고 거기서 하나와 전체의 원리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다시 하나가 된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는 원융사상은 그 당시 국가경영에서 가장 절실했던 사상철학이기도 했다. 삼국이라는 이질적인 국가체제가 하나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통치체제의 구축도 중요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삼국의 백성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첫 출발점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나누어지는 봉황산 중턱으로 삼은 것은 이곳이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일찍부터 힘을 겨루었던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는 이 곳을 장악해야 고구려 지역으로 뻗어나 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삼국 경영의 새로운 사상적 웅지를 펼쳤다는 것은 국토의 외진 곳에 위치한 수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치적 의미가 깃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창건 이래 화엄종풍을 드날린 부석사는 경사진 봉황산 중턱을 깎아 수많은 계단과 돌축대를 배치하여 무한대로 펼쳐 진 소백산맥의 봉우리들을 절 마당으로 끌어들이고 축대 또한 첩첩 조금씩 각도를 달리해 앞산 능선과 조화를 이루었다. 나아가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홉 단계의 돌계단을 거쳐야 하는 이 가람배치가 단순히 산중턱이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계단과 축대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극락세계의 9품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 시킨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도량 자체를 커다란 화엄불법(華嚴佛法)의 세계로 상징화시키기 위해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홉 단계의 돌계단을 거치는 구도를 설정한 것이며 아울러 중심축선을 일직선으로 하지 않고 마지막 안양루에 오르면서 살짝 꺾이게 하여 자연스러움을 연출한 것이다.

9품 만다라는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한 방법으로 하품하생(下品下生)에서 중품중생(中品中生) 상품상생(上品上生)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 단계를 수행하면 극락세계에 환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부석사의 도량은 바로 그 9품 만다라를 상징화한 것으로 천왕문은 하품하생, 범종각은 중품중생, 안양루는 상품상생으로 마지막 무량수전 앞에 이르면 누구라도 업을 씻고 극락정토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 산 아랫자락의 일주문을 지나 차츰차츰 경사진 길을 따라 천왕문, 범종각을 거쳐 드디어 산 중턱의 안양루와 무량수전에 이르는 길은 고해의 세계에서 극락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의상대사 이후 화엄종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은 부석사는 고려 초에 병화를 입었다가 11세기 중반 원융국사에 의해 중수되었고, 고려 말에는 진각국사가 대규모 중창불사를 일으켜 면모를 일신하였다.


자연과 인공, 그 조화의 극치미 浮石寺

한국 전통건축의 백미로 부석사가 꼽히는 이유를 들자면 우선 이 절만이 갖는 독특한 공간 구조와 장엄한 석축단, 그리고 당당하면서도 우아함을 보이는 세련된 건축물을 들 수 있다.
무량수전으로 가기 위해선 십여 개의 석단을 지나야 하는데 이 석단 또한 부석사 건축의 미를 느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각 석단의 높이가 서로 다르고 또한 석단이 위치하는 간격도 모두 달라 높은 단 하나를 오르면 다시 낮은 단들이 나타나고 다시 높아지는 등 매우 리드미컬하게 발걸음을 조절케 한다.
이것이 비로 입구부터 무량수전까지 거리가 먼 데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이 힘들이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산지나 구릉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길게 늘어진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중심축을 따라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높낮이가 높아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소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으로 부석사도 예외는 아니다.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라면 대석단 위 범종각까지가 전개해 나가는 공간인 승(承)에 해당되고 여기서 축이 꺽여 전환점을 맞는 안양문까지가 전(轉)의 공간이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가람의 종국점이므로 결(結)이라 할 수 있다.


起, 불이(不二)의 공간으로

생과 멸, 성과 속,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그리고 나와 너가 따로 없는 불이(不二)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길목,
부석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는 1㎞ 진입로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봄에는 실바람에 움트는 새싹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가을에는 황금빛 융단 은행잎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칼바람을 인 초연한 자태로 '이 땅 최고의 명상로'라는 말에 걸맞게 그 풍치가 아름답다.
특히 매년 10월 하순경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흩날리며 비단길을 펼치면 꿈에서 그리던 극락이 따로 없다.



承, 깨달음을 향하여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았으며 특이하게도 지붕이 앞면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반대편 뒤쪽의 경우 맞배지붕 형태를 하여 불균형 속에서 균형의 미를 자아내고 있다.

부석사가 전체적으로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할 경우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 보일 것을 염려해 범종각을 옆으로 앉히고 뒤쪽을 맞배지붕으로 처리해 날카롭게 비상하는 느낌을 살렸다.
홀로 방향을 달리했으나 전체 구도와 오히려 더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낸 범종각처럼 세속에 있으나 선인(仙人)처럼 마음 가눌 줄 아는 참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며 안양루를 향한다.


轉, 극락으로 가는 길목

부석사의 구도 기법 가운데 큰 특징은 대지 전체가 여러 단의 석단으로 나뉘어 구축되었다는 것이며 특히 범종각까지의 구성축과 무량수전의 축이 분리 굴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곡선배치로 인해 범종각 밑을 통과하면 우선 무량수전의 왼쪽 처마가 보이고 안양문을 통과해야만 무량수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즉 무량수전으로 가까이 갈수록 무량수전이 서서히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암시'효과를 발휘한다.

건축학에서는 이를 '공간전이(轉移)'라 부르는데 무량수전에 이르는 마지막 통로인 범종각과 안양문까지 바로 이 암시효과를 살려 무량수전이 한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접근하도록 배치하여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배치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또한 갑자기 좁아지는 안양문 통로는 무량수전이 주는 트임을 최대화하는 구도적 의도뿐만 아니라 극락세계로 가는 다리인 안양루에 오르는 긴장감과 마침내 극락세계 무량수전에 이르는 기대감을 한껏 실어준다.


結, 극락정토에 이르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 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浮石寺(부석사)


平生未暇踏名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부석사(浮石寺) 안양루(安養樓)에 걸린 김삿갓 시(詩)


종교로 승화된 사랑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낭자를 모신 건물이다.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어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 있다.

서기 699년에 중국 땅을 밟은 의상은 잠시 머물게 된 집에서 아름다운 처녀 선묘와 만나게 된다. 선묘는 첫눈에 의상에게 마음을 뺏기지만 그가 여자를 멀리하므로 두 사람은 끝내 연을 맺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의상이 적산에 있는 법화원으로 옮겨 머무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탁발을 나설 때 선묘가 몰래 바라보면서 흠모했다고 한다. 선묘는 절 밖에서 의상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마음을 전하려 했으나 의상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 의상은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떠났으며 근처 종남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하는 지엄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10년간 불교공부를 했다.
의상은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가 신라로 돌아가기 위해 등주 항구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선묘는 자기가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 주고자 바닷가로 갔으나 이미 의상을 태운 배는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선묘는 그리워하던 의상에게 법복이 무사히 전달되도록 마음속으로 빌면서 배를 향하여 던지니 법복은 무사히 의상 품안으로 떨어졌다.
선묘 또한 평소 독실한 신도로써 의상을 사모하면서도 의상이 불법을 공부하여 득도하고 무사히 귀국하도록 부처님에게 빌었다.
의상이 떠나자 함께 따라 갈 수 없게 된 선묘는 결국 자신이 용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면서 황해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에 하늘이 감읍하여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면서 신라까지 무사히 보살폈다고 한다.

귀국 후 의상은 명산대천에 사찰을 지으라는 문무왕의 명을 받고 마침내 절터로 정한 곳이 곧 지금의 부석사 자리이다. 그러나 그가 이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미 이곳에 와서 절을 짓고 사는 5백 여 명의 다른 종파의 불승들이 크게 반발하였고 의상이 마음속으로 부처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나타나 3일 동안 공중에 머물면서 반대하는 불승들을 향하여 내리칠 듯 위협하니 그들은 두려워서 달아나고 종국에는 굴복하여 새 절을 짓는데 협조하게 되었다.

선묘의 넋이 의상을 보호하고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것으로 바위가 되어 땅에 내려앉은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하고 선묘의 도움으로 지어진 이절의 이름을 '부석사'라고 지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위 아래 바위 사이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뜬 돌임을 알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천삼백년 전 사랑이 주는 감동이 운무처럼 밀려올 때 그 여운을 몰고 삼층석탑이 있는 뒤편 오솔길을 따라 조사당으로 향한다. 전 가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느낌을 주는 맞배집이며 무량수전과는 또 다른 건축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조사당 벽면에는 고려시대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벽면 전체를 떼어 내어 보호각에 따로 보존하고 있고 그곳엔 모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한 조사당 옆에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선비화가 쇠창살로 보호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부석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에 건립한 목조건물이며 부석사에는 석등,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등 5점의 국보가 있고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3층 석탑, 당간지주, 고려각판 등 4점의 보물이 있다. 이 외에도 2점의 지방유형문화재가 있다


* 부석사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에서 신갈IC를 지나 영동고속도로 진입 → 남원주IC를 지나 중앙고속도로 →서제천 IC에서 단양, 풍기 → 부석사·소수서원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잘 정비되어 있다.

2차선 도로를 달리다 소수서원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931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가면 부석사 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에서 부석사까지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린다.

* 관광안내 :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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