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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역사적 의의

  • 구분 소수서원 이산서원 도산서원
    1542
    (중종37년)
    -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을 기리고자 안향이 어릴 때 공부하던 숙수사 옛터에 사당(文成公廟)을 세워 위패를 모시고 영정을 봉안    
    1543
    (중종38년)
    - 백운동(白雲洞)서원을 창건하고, 첫 입원유생을 3명 받음    
    1544
    (중종39년)
    - 주세붕이 원규(院規)를 제정
    - 안축, 안보 형제를 배향
       
    1549
    (명종4년)
    -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 백운동서원을 나라에 사액(賜額)요청    
    1550
    (명종5년)
    - 명종(明宗)이 “紹修”라 이름짓고 직접쓰신 글을 현판에 새겨 하사 하심
    ※ 서책, 노비, 토지 등 재산하사
       
    1554
    (명종9년)
    - 이퇴계가 역범도(易範圖)를 제작, 소수서원에 보관    
    1558
    (명종13년)
      영천(榮川)군수 안상이 이산서원(伊山書院)건립
    - 이퇴계가 원규제정과 경지당(敬止堂) 현판 씀
     
    1560
    (명종15년)
        - 퇴계가 도산서당(陶山書堂)준공
    1574
    (선조7년)
      - 퇴계가 70세로 별세하자 「이산서원」사액과 함께 처음으로 퇴계 위패를 봉안
    - 퇴계 생전작품인 「성학십도(聖學十圖)」목판제작
     
    1575
    (선조8년)
        -「 소수서원 」 출신의 퇴계 제자들이 도산서당을 사액 요청하여 「도산서원」으로 사액받고 퇴계 위패 봉안
    기타 - 1543년부터 1888년까지 4,000여명 배출
    - 이중 퇴계 문하생의대부분이 포함됨
    300여명 225명